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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 이기성(생각나눔)
책 소개신간 도서
이래봬도 말짱해!
어디쯤인지 모를 진담 반 농담 반 사이에서,
유쾌함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하루. 대수롭지 않게 또 한 줄을 넘긴다.
겸손함이야말로 내가 가진 여러 자랑거리 중 하나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그런데 팩트(Fact)인가요, 픽션(Fiction)인가요?”
만약 나를 작가로 인정했다면 애초에 나오지 않았을 질문이다. 이미 빈정이 상한 나는 대충 얼버무린다.
“글쎄요, 저도 써놓고 보면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인지 헷갈립니다.”
콩트란 인생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해학과 풍자를 담는 장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위트와 기지는 기본,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반전은 덤이어야 한다. 독자의 재미를 위해 복선을 까는 건 작가의 특권이며, 동시에 은근한 쾌감이다. 그럴싸하게 쓰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과 깊은 관찰이 필수다.
어느새 콩트는 문학계에서 실종된 장르가 되어버렸다. 비평가들은 관심조차 없고, 지망생인 나로선 괜히 서럽다. 그래도 언젠가는 겸허하게 이런 말 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저는 콩트 작가입니다. 제 글은 팩션(Faction)입니다.’
웃으며 집필에 들어섰다가 울면서 탈고를 마무리했다.
구태의연한 자서전은 애시당초 염두에도 없었다. 술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은 거뜬하리라 믿었다. 나름 폭넓은 경험을 해왔고, 그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보고 싶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어떤 글은 전부 체험이었고, 어떤 건 아예 허구였다. 그때그때 떠오른 거리에 맞춰 할 말은 했고, 재미까지도 챙겼다. 제법 잘 써냈단 자부, 지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내려니 조잡하고 허술한 글이 적잖았다. 그럴듯한 것만으론 양이 부족해, 빈틈을 메우는 사이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렇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집 한 채 한 채는 그럴싸했어도, 전체로 보면 맥락 없이 산만하게 배열된 주택단지 같았다. 초가집 옆에 기와집이 어울리던 옛 시골 마을처럼, 이질적인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바랐으나, 솔직히 자신이 없다.
죽도 밥도 아닌 애매한 무언가가 되었을까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글쓴이를 아끼는 마음으로, 죽도 먹고 밥도 먹는 한식 정찬이라 생각하며 한술 떠보시면 어떨까? 혹여나 세계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각자의 요리를 뽐내는 경연대회에 팔자 좋게 시식 위원으로 초대받았다고 쳐보시라. 그쯤이면 나쁘지 않을 게다.
게다가 퇴고를 해보니, 오탈자는 바퀴벌레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이리저리 꼬인 문맥 속에서 나조차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탈고에 닿는 길이 이렇게 험난하고, 버거울 줄은 진즉에 몰랐다.
그럼에도 하나 건진 게 있다. 직접 삽화를 그려 넣기로 마음먹은 뒤, 서툰 선은 어반 스케쳐스로 이어졌고, 쏠쏠한 손맛은 덤이었다.
어설퍼도 그게 내 결이다.
책 제목과 부제를 결정하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맨 처음은 ‘콩트가 꿈틀댄다’였다. 제목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전부 콩트로만 채우기엔 버거웠고, 술로 한정하기엔 겪어온 스토리가 그릇에 넘쳤다. 결국 첫 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내려놓게 됐다.
대신, 뭔가 더 날것의 생동감을 담아보자는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의 추천도 곁들였다. ‘세상이 무거워도 가볍게’, ‘인생을 빚어 삶을 디켄팅하다’, ‘이쯤에서’, ‘대충 살아도 괜찮아’ 같은 후보들을 추려놓고 AI에게 지시했다.
“책이 가장 잘 팔릴 듯한 제목을 찍어줘.”
솔직히 좀 걱정은 됐다. 내가 끌리는 제목과 골라준 제목이 다르면 인공 지능 녀석이랑 기싸움이라도 한판 벌여야 하나 싶었다. 기우였다.
“‘이래봬도 말짱해’가 위트와 자조, 자신감이 모두 담긴 강렬하고 매력적인 제목입니다.”
요렇게 정확히 찔러주는 답변에, 통했다 싶어 반가웠고, 두말없이 수긍했다. 홀로 외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 참이었는데, 누군가 알아주니 괜히 기운이 솟았다. 책 한 권 사 줄 리 없는 애한테 인정받고도 혼자 뿌듯해져, 하마터면 Chat GPT 4o를 위해 감사의 글까지 만들 뻔했다.
‘이래 봬도’가 맞다 해도, 눈깔 나고 맛깔 내려면 정신줄은 꽉 붙잡고 맞춤법쯤은 가끔 놓아도 괜찮지 싶다.
인생을 외계인 출장이라 여기며, 살짝 비튼 시선과 현재진행형 삶의 조각들을 담아보려 ‘대믈리에의 지구별 출장 중간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았다가, 너무 뻔하고 식상해 지워버렸다.
국내 시장이 좁다는 우려에, 아예 세계에 내다 팔 요량으로 영문판 제목 Quirky Yet Fine을 앞표지에 걸었다. 어차피 폼생폼사니까.
이쯤에서, 내 삶의 한 획을 긋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살아가는가?
조지 오웰은 글쓰기의 첫 번째 이유로 “순수한 이기심”을 들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 존재 자체가 유전자의 이기심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글을 쓴다는 건, 지나온 자리에 발자국을 남기고픈 본능에서 비롯된 일이다. 결국 나라는 생명이 남기는 건 언어의 흔적이고, 살아간다는 건 어딘가에라도 존재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이다.
그 모든 행위는, 결국 자기 복제이자 자기 위안과 다름없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흐릿해질 때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만이 나를 붙들어줬다. 호기심의 앞바퀴가 이끌고, 뒷바퀴는 불안감이 받쳐주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과 안정을 바라는 욕구가 절묘하게 균형을 지탱해 주는 삶. 그 자전거가 서지 않고 굴러가며 나를 이어줬고, 바퀴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틈틈이 글을 써왔다. 네이버 블로그, 다음 카페, 카카오 브런치, 그리고 내 컴퓨터 구석 어딘가에 나를 흘려 두었다.
그걸 그냥 엮기만 해도 책 한 권쯤은 나오겠지 싶었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글을 쓰는 일, 그걸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작업, 그리고 누군가의 책장에 꽂히게 만드는 과정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혼자 좋자고 하는 거라면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럼에도 어디선가 이 글에 기꺼이 값을 치르고, 귀한 여유까지 내어줄 거란 믿음을 쉽사리 거두지 못했다. 쑥스럽긴 해도, 나로서는 품어볼 만한 사치다.
더불어 이 책의 인세로 떠날 여행, 항공편은 이미 검색해 뒀고, 숙소는 아직 고민 중이다.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다시금 넋두리만 길게 늘어놓고 말았다. 짧게 쓰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박정용 SiMone Park
런던 WSET 과정을 들여와, 충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와인 스피릿(Wine & Spirits)’ 강좌를 스무 해 가까이 열었다. ‘소믈리에’보다 한 수 위라는 뜻에서 ‘대믈리에’ 혹은 ‘대물리에’로 불렸다. 요사이 영혼의 고갈은 스피릿으로 채운다. 바텐더를 꿈꾸며.
술 퍼마시는 건 좋아해도, 글 퍼오는 건 질색이라 아예 문학저널에 수필로 등단했다. 술장엔 위스키가, 서랍엔 묵은 글이 숨을 고르고, 이제 와인 한 통쯤 책으로 빚어, 빈 잔에게 말을 걸어볼 참이다.
동성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어찌하다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청주에 살며, 여태 ‘그린치과(www.grin.co.kr)’에 몸담고 있다.
사진은 남들도 마구 찍기에 접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행은 필요해!’라는 핑계로 유튜브 ‘보이에이징(@voyageing)’에서 영상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쌍팔년도생이라 할 건 해야 직성이 풀린다. 세련됨은 어김없이 챙기고, 진부함은 가차 없이 밀어낸다.
어릴 적 놓쳤던 예체능의 세계가 자꾸 아른거려, 우쿨렐레며 어반스케처스(USk), 아르헨티나 땅고까지 기웃거렸다. 문화를 새로이 창조할 깜냥은 못 돼도, 그 안에 흠뻑 젖어 함께하고는 싶다.
무엇보다 여행을 사랑한다.
앤티크 코크 스크루, 손수 매듭짓는 나비넥타이, 포크 파이 스타일 모자가 남보다 많은 게, 그게 다다.